-20일(토) 오전 포항 흥해하수처리장 체육공원 일원서
-(사)최세윤 의병대장 기념사업회(회장 배용일) 주최 500여명 참가
포항 흥해 출신으로 산남의진 3대 대장이었던 최세윤 의병대장과 포항을 비롯 경북 동해안 지역 출신 의병들의 숭고한 의병정신을 되새기는 의병체험 행사가 포항에서 처음 열렸다.
사단법인 ‘최세윤 의병대장 기념사업회’(회장 배용일 포항대학 명예교수) 주최의 ‘제1회 포항의병체험 대회’가 20일(토)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하수처리장(칠포) 일원에서 학생, 일반인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번 행사 개최 목적은 최세윤 의병대장과 그 부대원들의 숭고한 구국정신을 되새기고, 활약상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학생은 물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들에게 과연 나라사랑의 참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특히 흥해 출신인 최세윤 대장은 산남의진 1대(정환직), 2대(정용기) 부자(父子) 의병 대장이 이어 3대 의병대장을 맡아 을사늑약(1905년)이후 일본군과 싸워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한국 의병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사)최세윤 의병대장 기념사업회 배용일 회장은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최세윤 대장을 비롯 의병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며 “일본의 독도 망언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 고취 등 진정한 극일(克日)을 위해서도 앞으로 이 행사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장 인사말 전문>
오늘 영일만 고장의 높고 푸르런 가을 하늘과 오곡이 무르익어가는 흥해 들판, 하늘과 땅도 처음 개최되는 제1회 산남의진 포항의병체험 행사의 기운을 북돋우어 호연지기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100여 년전 한말, 일본의 침입에 맞서 나라와 겨레 그리고 천혜의 일월고장, 포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의병정신을 되새기고 그 활동을 체험하는 뜻깊은 자리에 시정과 국정에 바쁘신 이강덕 포항시장님, 이병석‧박명재 국회의원님, 박창표 경주보훈지청장님, 각급기관 단체장을 비롯한 내빈 여러분들께서 참석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에 기꺼히 참여하신 청소년과 시민들께도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한말 우리 고장 포항에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목숨을 바쳐 민족정기를 드높인 애국선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포항 충의의 사표로 청사에 빛나는 산남의진(山南義陣) 3대 최세윤(崔世允) 의병대장과 이 고장 수백의 산남의진 의병들입니다. 최세윤 의병대장은 호가 농고(農皐)이며 1867년 11월 흥해 곡성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재주와 기상이 뛰어났으며, “평소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고 선비는 나라의 원기가 된다” 하며 선비의 길을 밝혔습니다.
1895년 10월 왜적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동향의 정래의와 함께 창의군 300여 명을 모집하여 안동의 김도화의진에 달려가 아장(亞將)을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다시 10년 후 을사늑약 직후 고종의 밀지로 1906년 3월 정환직․정용기 부자에 의해 영천에서 결성된 산남의진의 흥해지역 활동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산남(山南)은 고려 때부터 문경새재 이남의 경상도지역을 말하며, 봉화에서 밀양까지 24개 지역의 의병이 1,000여 명 참여하였으며, 영천‧포항‧청송인이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선생은 탁월한 전술로 수차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산남의진의 위세를 크게 진작하였으며, 특히 1907년 9월과 10월의 2차 흥해전투에서 100여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흥해분파소를 공격하여 적을 포살하고, 무기를 압수하고, 분파소를 소각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이같은 활약과 공적으로, 1대 정용기 대장, 2대 정환직 대장이 1907년 9월과 11월에 죽장 입암전투와 영천에서 잇따라 순국하자, 1908년 2월 정환직 의병대장의 유촉에 따라 산남의진 전 장병의 추대로 제3대 의병대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선생은 위기의 의진을 재정비하고 일군경의 초토화 전술에 맞설 수 있는 지역부대 중심의 유격전을 구사하여 흥해․청하․영덕․청송․영천․의성 등지에서 항전하였으며, 일제강점이 시작될 무렵 선생은 지역부대를 남동대산에 옮겨 장기군 일대의 산간에서 유격전을 펼치다가 1911년 9월 장기 내남면 용동에서 일경에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11월에 대구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를 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이감되어 5년간의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에 항거하며 11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1916년 8월 9일 50세의 일기로 자정(自靖) 순국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세윤 의병대장 일가는 그 시대 최고의 가치관인 천하삼절(天下三絶) 곧 삼강을 실현하여 한말 민족정기의 표상과 충의의 사표로 빛나고 있습니다. 선생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忠’으로, 부인 윤영덕 여사는 남편의 뒷바라지로 ‘烈’로, 장자 山斗는 1908년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다 잡히어 종신형을 받고 아버지의 행적을 숨긴다는 이유로 갖은 고문과 형벌을 견디며 함구로 저항하다가 1912년 9월 9일 25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여 ‘孝’를 구현하였습니다. 대한민국정부는 1968년 공의 애국정신과 항일투쟁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1976년 부인 윤씨 묘와 함께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이장하였습니다. 포항 충의의 사표인 최세윤 의병대장을 비롯한 산남의진 장병들은 국방과 호국의 요충지 국가와 포항의 역사적 과제를 달성해 온 훌륭한 호국선열들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어느 누구도 그 숭고한 충의의 정신을 바르게 선양하는 사업에 관심을 기울리지 않고 소홀하였으니 어찌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산남의진과 최세윤 의병대장의 공적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1982년 한국독립운동사와 향토사 연구의 일환으로 <산남의진고-정환직 정용기 부자의병장을 중심으로->가 학술지에 발표한 후 이어 수편의 논문이 잇달아 발표되고, 지난해 기념사업회에서 <최세윤 의병대장의 항일투쟁고>를 발표하여 그 위상이 정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 논문들을 바탕으로 선생의 서거 96주년을 맞은 2012년 3월, 최세윤 의병대장 일가의 천하삼절(天下三節:三綱)과 구국대의(救國大義)로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이름 모를 의병들의 훌륭한 공적을 길이 받들기 위해 뜻있는 시민들이 ‘최세윤 의병대장 기념사업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이어 7월에 국가보훈처로부터 (사)최세윤 의병대장 기념사업회(대표자:배용일) 법인 인가를 받아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유인물의 활동연혁에 소개된 바와 같이 지금까지 100여 차례의 강의와 신문 방송 인터뷰를 실시하였으며, 지난해에는 (사)동대해문화연구소(소장:박문하)를 통해 스토리텔링의 단행본《산남의진 3대 의병대장 최세윤》을 출간 한 바 있습니다.
오늘 개최하는 ‘제1회 산남의진 포항의병체험’은 기념사업회의 설립 취지를 실현하는 행사로서 그 목적은 산남의진 최세윤 의병대장과 장병들의 숭고한 구국정신을 되새기고, 활약상을 본받아 체험함으로써 학생은 물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들에게 과연 나라사랑과 향토사랑의 참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포항인의 자랑과 긍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내년부터는 국가에서 지정한 6월 1일 의병의 날에 맞추어 알차고 짜임새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제1회 포항의병체험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후원해주신 언론기관, 흥해장학회, 흥해농협, 고려대학교 포항교우회 이태우 명예회장님, 광복회 포항지회장 배지량님, 흥해 경희요양병원장 이순자님, 일월충의회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께서 뜻깊은 포항의병체험행사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라며, 앞날의 건승과 가정의 만복을 축원드리면서 인사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9월 20일(토)
(사)최세윤의병대장기념사업회장 배용일
뉴스경북' 자랑스런 경북인과 함께 합니다